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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소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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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국제펜클럽 | 아이피 | 211.217.242.5 |
작성일 | 15-12-02 14:25 | 조회수 | 23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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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문학 127호-국제펜소식=2015. 6. 25
국제PEN클럽 존 롤스턴 소울 회장이 PEN에게 보내는 편지
PEN 가족 여러분 그리고 친구들,
이번 봄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야심찬 세 나라를 중재하는 일을 맡아 수행했습니다. 16개 PEN센터가 참여했지요. 우리가 ‘PEN 미 대륙 정상회담’이라고 부른 그 일은 우리가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로, 니카라과에서 멕시코로 옮겨가면서 전개되었지요.
이 정상회담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어떤 면에서,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작가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폭력은 현재도 계속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또 어떤 면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칠레, 그리고 캐나다까지 아메리카대륙에 있는 전 지역에 걸친 광범위한 PEN의 전략을 세우기 위함이 또 하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PEN의 힘을 주목하고 싶었지요. 그것은 우리의 참여와 우리가 미친 영향의 주목할만한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직 과정 중에 있을 뿐이며 이 정상회담은 우리가 해야할 남은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칼스 토너, 타민신 미쉘, 그리고 우리의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와 로베르토 알바레즈로 이루어진 우리의 작은 집단은 저널리즘을 수행하기에는 가장 치명적으로 위험한 지역인 온두라스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디나 메자가 이끌고 있는 인상적인 새로운 온두라스 PEN 센터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캐나다 PEN에서 온 브렌던 드 카이르와 토론토 로스쿨 대학에서 온 카이틀린 오웬스는 PEN 온두라스 보고서를 함께 마치기 위해 그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법무장관인 아브라함 알바렝가 어비나, 정부 고위층, 그리고 유니버시다드 오노노마 드 온두라스의 총장인 줄리에타 카스텔라노스와 만났습니다. 우리는 작가들에게 행해진 폭력에 있어서는 91%가 처벌이 행해지지 않은 그 재앙적인 수치에 대해 강력히 주장했지요. 조사기관들이 수행에 착수하려는 몇가지의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는 하나, 그것들은 자금부족을 심각하게 겪고 있어 실제적으로는 거의 무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분위기에 있어서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최종 대언론 공식 회의를 떠나는 도중에 우리의 참가자들 중 한명을 납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알려진 온두라스의 TV 저널리스트인 줄리오 어네스토 알바라도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임원들은 명예훼손법을 이유로 그를 침묵시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해왔죠. 2014년 3월 25일 있었던 아메리카 인권 위원회 이전의 우리의 출현을 포함하여 PEN과 다른 집단들의 다중 개입은 온두라스 법은 무시하고 법원의 예방 조치들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죠.
하지만 알바라도의 예가 우리에게 주목할 수 있게 하는 사실은 바로 명예훼손법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 전지역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많은 지역들에서 그것이 현재 부당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명예훼손법이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기 위하여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 창안된 전민주주의적인 도구라는 것입니다. 명예훼손법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형법 내에 포함되어서는 안 됩니다.
니카라과에서 우리는 지오콘다 벨리가 이끄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센터의 관리 하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요. 지오콘다와 저는 또 작가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그라나다 국제 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다음날, 어니스토 카데날과 지오콘다와 함께 저는 캐리비안해에서부터 태형양까지 운하를 건설하는 정부의 계획에 대하여 열린 마나구아에서의 공식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일까요, 더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일까요?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급진적으로 환경과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정들이 적절한 토론이나 서류들에 대한 검토 없이 내려졌지요. 그것은 정말 권위주의적이고 미심쩍은 절차를 거쳐 왔습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폭력 없이 억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시가 되어왔죠.
우리는 그 뒤 온두라스, 니카라과 그리고 과테말라의 칼라 올라스코아가를 포함한 PEN 센터들과 함께 모여앉아 중앙아메리카 PEN에서의 전략인 마나구아 선언서를 세우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베로아메리칸 PEN 재단의 회장이자 국제 PEN의 부회장이며 파나마인인 글로리아 거디아도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멕시코시티였습니다. 3번째 PEN 대표단이 그곳에서 4년 내에 있을 예정이지요. 16개 PEN 센터에서 작가들이 모인 곳이었죠. 그것은 주목할 만한 모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루이자 발렌주엘라,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아귀라, 하이티의 장 유펠 밀스, 그리고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의 지역들과 과테말라 센터의 부회장과 더불어 그 지역의 6개 센터 회장들이 모두 함께 모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자리였지요. 로버트 왈라스는 USA PEN에서, 파블로 메디나와 산드라 시스네로스는 아메리카 PEN에서, 가스톤 벨마레는 퀘벡 PEN에서, 웨인 그래디는 캐나다 PEN에서 왔습니다. 독일 PEN의 레귤라 벤스케, 웨일스 PEN 심루의 딜런 모어 또한 호리 타케키, 에릭 랙스, 마리안 보츠포트 프레이저, 조안 리덤-애커맨 그리고 저를 포함한 국제 대표단도 함께 참여했씁니다.
우리는 멕시코 PEN의 앨리샤 퀴노네스와 로즈 마리 에스피노사와 함께 회장 알린 다비도프에게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구아다라자라 PEN의 리타 크라치안과 산미구엘 드 알렌데 PEN의 빅토르 사후아토바 또한 깊이 관여해주었지요.
우리는 무엇이 변화해는가에 관한 매우 분명한 공식 입장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2012년 프로테스타 PEN을 이어서 프리건타 PEN에서 열린 대규모 공식 행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호메로 아리드지스, 엘레나 포니아토브스카와 카르멘 아리스테귀를 포함한 5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대표단과 멕시코 작가들이 모두 알파벳 순서대로 한명당 1분씩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멕시코시티의 시장은 도시 내 문학과 표현의 자유의 역할에 대한 공식 논의와 함께 모든 대표단의 도시 방문을 정식으로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그 뒤 인상적인 새로운 인권 위원인 루이스 라울 곤잘레즈 페레즈를 만났습니다. 그 뒤 내무부 장관인 미구엘 안젤 오소리오 총과 이루어진 두 시간동안의 만남과 외무부장관인 호세 안토니오 미데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쭉 이어진 공무원들과의 진지한 만남들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몇 사람이 상원 인권 위원회 앞에서 진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요.
현 상황은 무엇일까요? 긍정적으로 보자면, 범죄 지도자들의 중대한 체포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필요한 만큼 효과적이게 유지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저널리스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주정부의 기구들이 강화되기도 했지요.
현실은 죽임을 당한 작가들의 수가 페나 니토 대통령의 지배하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오직 부패의 위험한 삼위일체라고 불릴만한 폭력과 면책에 대한 저항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권력자들이 전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면책은 변화의 측정기준입니다. 멕시코에서 그것은 90퍼센트에 달합니다.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부패가 그 원인입니다. 만일 시민, 정치, 그리고 군사 분야에 종사하는 고위 공무원들과 주류 사업계 지도자들이 조사받고 재판받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자, 한 장관은 살해당한 103명의 작가 수와 사라진 25명의 작가 수는 그리 많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격분을 표출했습니다. 그 뒤 그는 1년 이내에 면책률을 70퍼센트까지는 낮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러한 언사에 무어라 답해야할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위기를 바꾼 또 하나의 사건은 2014년 9월 26일 아욧지나파의 43명의 학생들이 살해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살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표현의 자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시위에서 발언을 할 목적으로 멕시코시티로 향하고 있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건 현장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던 오마 가르시아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젊은이입니다. 계속적으로 목소리를 냈으며 계속적으로 위협을 받아왔지요. 멕시코 정부는 그가 어느 편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참여하는 모든 센터들과 함께 아메리카 PEN 정상회담의 두 번째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물로서 아메리카 PEN 정상회담 선언문의 전략계획을 내었고, 퀘벡 회의가 열릴 10월에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 가기 전에 저는 마세도니아 오치드에 PEN과는 관계없는 이유로 머물렀습니다. 후에 스콥제에서 저는 이제 얼미스 라파자노브스키와 블라디미르 마티노브스키가 이끌고 있는 마세도니아 PEN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덧붙이자면 우리의 국제 부의장단들 중 한명인 카티카 쿨라브코바 또한 마세도니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회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세도니아에서 이미 심각해지고 있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우리의 국제 부의장단들 중 또 다른 한명인 비다 오제노빅 또한 우리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그 당시에, 마세도니아의 주도적인 저널리스트들 중 한명인 토미슬라브 케자로브스키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PEN은 그에 대한 고소에 있어서 그 어떤 정당성도 찾아볼 수 없었죠. 그리고 대규모 문화공동체가 제가 스콥제에 있는동안 시위 행진을 강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티카 쿨랍코바, 블라디미르 마티노브스키, 나타샤 아브라몹스카와 제가 참여했지요. 시위 행진을 반 정도 이루었을 때, 토미슬라브가 감옥에서 해방되어 그 자신도 시위 행렬에 가담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블라디미르와 나타샤와 함께 그와 그의 가족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지난 4년간 숨낳은 작가들을 포함해서 20,000명의 사람들에게 행해진 감시가 폭로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규모의 시위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기능하려는 한 국가가 고위직 관료들에게 권력을 가져다준 바로 그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려고 하는 매우 기이한 사건들 중에 하나입니다.
미국에는 두개의 인상적인 PEN 센터가 있습니다. 몇 주 전, 에릭 락스와 저는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 힐스에 위치한 USA 펜 센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의 부회장 제이미 울프와 회계 담당자인 밥 월러스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밥은 센터가 맡고 있는 멕시코 미션의 대표단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전무 이사인 미쉘 프랑케가 이끄는 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센터는 몇가지의 훌륭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개의 서로 다른 문학상을 주최하고 있지요. 그들은 보호소와 토착민 사회, 그리고 교실들에서 글쓰기 워크샵을 체계화시켰습니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그들의 “새로운 목소리” 프로그램일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작가가 되고 싶어 ㅜ하지만 그 기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성공적인 지원에 성공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멘토링과 UCLA에서의 수학, 마스터클래스, 음성 지도, 그리고 출판업계 종사자들과 편집자들과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포함하여 8개월간의 회원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프로그램이지요.
여러분들 중의 몇몇은 뉴욕에 본사가 있는 다른 미국 PEN 센터들 내에서 있어온 격렬한 논쟁들에 대해 접하게 되실 겁니다. 이 논쟁은 찰리 헵도에게 상을 줄 것인지의 여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죠. 이러한 종류의 논쟁은 건강한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전세계의 PEN 센터들에서 서로 다른 문젯거리들에 있어서 그러한 종류의 논쟁이 벌어진 것은 늘 있어온 일이지요.
그리고 각각의 케이스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두꺼운 낯을 필요로 하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저는 한 나라와 정부의 지도자들 혹은 장관들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거의 유치할 정도로 과민하며 자아 존중감이 매우 유약하고 그들을 비판에 노출시키는 공론의 장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합니다.
저는 언제나 그들에게 비판이나 모욕 등에 쉽게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들이 바로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본보기를 따라야한다고 말이죠. 우리는 불공정하고 불쾌한 비판들에 익숙해져 왔습니다-그것은 불공정한 일임에 틀림이 없지요!-바로 우리의 최초의 책이 출간된 그 순간 이래로 쭉 말이죠.
4월 14일과 15일, 자코 톤티, 조세프 하스링거, 독일 PEN 회장, 칼스 토너, 조 글란빌, 영국 PEN의 임원과 저는 브뤼셀의 유럽 연합 의회에서 지중해 난민/망명자 구출자 위기에 관한 놀랄만한 공문서를 산출시키는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은 독일 PEN에서 제안한 계획이었죠. 그 서류는 유럽이 어떻게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정책에 입각한 조금더 긍정적인 위치에 서게 될 수 있을지를 설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1200여명의 유럽 작가들의 서명을 받았죠. 귄터 그래스가 첫번째로 서명을 한 이였스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공적인 행동이었죠. 당신이 서명하는 것도 여전히 가능합니다. 우리는 기자회견에서 유럽 연합 의회의 회장인 마틴 슐츠에게 그 서류를 제출하였고 사적인 자리에서 그와 함께 앉아 상황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우기 상황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 유럽 연합 의회와 함께 공적인 회의 자리를 가졌고, 그를 통해 세명의 작가들이 더 우리 그룹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타미마 아남, 영국-파키스탄의 소설가인 카밀라 샴시, 터키-독일의 작가인 에미네 세브기 오즈다마르가 그들이죠.
저의 마지막 편지에서 저는 방글라데시의 상황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PEN 센터를 가지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의 상황은 점점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2014년 11월 제가 그곳에 있을 당시에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신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블로거들이 연달아 줄줄이 살해당하고 가장 최근에는 아나타 비조이 다스와 워시퀴 라흐만 바부 그리고 아비지트 로이와 같은 이들이 희생자가 된 더욱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도 알다시피, PEN은 점점 더 많은 국가들에서 LGBTQI 사회에서의 표현의 자유 권리를 제한시키는 정책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힘들게 작업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중점을 둔 PEN OutWrite라는 새로운 웹사이트를 시작했고, 이는 파블로 시모네티와 콤 토이빈의 기여를 통해 이루어졌지요.
한번 들어와 보시고 여러분도 함께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행운을 빌며,
스웨덴PEN-방글라데시 작가 아난타 비조이 대시의 죽음에 대한 성명서
스웨덴 PEN은 화요일에 벌어진 작가이자 블로거인 아난타 비조이 대쉬의 살해 사건에 대해 다카 구의 스웨덴 대사관으로부터 응답을 요구한다
“당신은 방문 이후에 솅겐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자를 발급받았을 때 위험이 언제나 내포되어있는 지원자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게다가, 당신 여행의 목적이 당신에게 비자를 발급해주기에 충분할만큼 위급한 것이 아닌 것으로 사려된다.” (다카 구의 스웨덴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 거절)
한 달보다 조금 더 전 즈음에 스웨덴 PEN은 3월에 일어났던 블로거 와시퀴 라만과 작가 아비지트 로이의 잔혹한 살해 사건 이후 점점 더 실제적인 주제가 되어가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저널리스트와 작가들에게 있어서의 악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작가이자 블로거인 아난타 비조이 대쉬를 스톡홀름으로 초대했다.
PEN의 초대는 PEN의 광범위한 활동 영역 내에서 국제 언론 대표들이나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을 만남이나 행사에 초대할 때 사용되는 표준적인 절차를 따라 이루어졌다. 아난타 비조이 대쉬와 5월 3일 스톡홀름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만남의 목적은 세계 언론의 날을 기념하는 것과 더불어 과격주의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대중 블로거로서 살고 있는 그의 현실과 결부되어있는 것이었다. 스웨덴 PEN에 따르면, 이러한 그의 상황은 그로 하여금 이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카 구의 스웨덴 대사관은 그가 스웨덴을 방문하기 위해 필요한 비자를 발급해주는 것을 거부했다.
오늘 우리는 아난타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소식은 우리를 깊은 슬픔에 빠뜨렸고 너무나 많은 의문점들을 불러일으켰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비자 승인을 거부 받은 그 날 스웨덴 PEN에 이메일로 전달해준, 스웨덴 대사관이 그의 비자 승인을 거부한 결정에 대해 그에게 보낸 내용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마지막 줄은 이런 내용이다: “그 방문 이후에 당신이 솅겐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자를 발급받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위험이 내재되어있는 지원자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게다가, 당신에게 비자를 발급해주기에는 당신의 여행 목적이 충분히 긴급하지 않은 것으로 사려된다.”
스웨덴 PEN의 격려에 힘입어 아난타 비조이 대쉬는 스웨덴 대사관 결정에 대해 상소했다. 그와 동시에 스웨덴 PEN은 스웨덴 대사관에 우리의 만남이 연기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난타 비조이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설명과 함께 그 결정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편지로 보냈다. 이것은 다음의 몇주 간 예테보리의 이민법원에서 다뤄져야 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일이 되어버렸다. 화요일 새벽 아난타 비조이 대쉬는 방글라데시 북부의 실헷 구에서의 작업을 위해 집을 떠나던 순간 마체테로 무장한 남자에 의해 난도질을 당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세계 언론의 날 함께 일한 스웨덴 동료들에 대해 그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아야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따라서 스웨덴 PEN은 왜 다카 구의 스웨덴 대사관이 스톡홀름에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PEN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 그가 필요로 했던 비자를 아난타 비조이 대쉬에게 주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상세하고 납득할만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 초대는 그의 도착 이후 2주 동안 스웨덴 PEN의 손님으로서 스톡홀름에 머무르는 것을 보장했을 것이며 그것은 이미 지난 주에 일어났어야 했을 일이고,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그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이곳으로 연락을 바란다:
올라 라스모, 스웨덴 PEN 회장 tel: 070-826 85 57
아니카 토르, 투옥된 작가 위원회 회장 tel: 070-753 66 42
델리PEN-마드라스 교육 기관 학생 그룹에 대한 승인 취소를 델리 PEN에서 규탄함
델리 PEN은 IIT 마드라스에 의해 암베드카 페리야르 스터디서클(APSC)에 대한 비승인과 공시적인 금지법령을 규탄한다. 델리 PEN은 이를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에 대한 규제로 여긴다. IIT 마드라스의 경영진이 그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학생단체가 기관의 학생위원회에 의해 명시된 지침을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영진의 조치는 아직 취해지지도 않은 그들의 직접적인 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체에 대해 익명으로 제보된 항의를 바탕으로 행해진 인사부서의 조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익명의 항의는 APSC에 의해 배포된 포스터와 팸플릿에 대하여 이뤄진 것이었다. 그 내용은 APSC가 반감을 조장하고 있으며 ‘지정 카스트’에 속해있는 학생들이 힌두교와 수상, 그리고 정부에 반하게끔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단체는 정치적으로 구성된 집단이며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받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APSC는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며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거부되었다고 항의를 제기했다.
IITs는 인도의 최고 교육 기관이며 그렇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지향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정학을 당한 철학과 학생이 세인트 스티븐 대학의 교장에게 그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 권리를 박탈한 것에 대하여 소송을 내건 것이 계류중인 델리 대법원에서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학문 기관들은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헌법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다. IITs는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둔 교육기관이지만, 그들은 또한 다른 중요한 분야들에 대해서도 다루는 토론과 담론에 있어서도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APSC는 그들이 가진 견해가 현 종교의 활동에 비판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IITs의 비평가들도 APSC와의 토론에 참여하고 그들만의 스터디집단을 만들거나 대안적인 견해를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공론의 장을 억압함으로써, IIT 경영진은 퇴보의 선택을 내린 것이다. 델리 PEN은 IIT 경영진이 그 결정을 퇴각하고 토론의 정신과 지적인 추구가 승리할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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